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125); 경로(經路)

기독교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125); 경로(經路) <여호수아 4:19~24>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길이라고 말합니다. 인생을 걸어가는 길 가운데서 뭔가 의미 있는 장소에 문득 멈춰서고, 어떤 의미 있는 시간 속에 잠시 머무르고, 내 삶의 걸음 가운데 하나의 이정표와 같은 것들을 세워갑니다. 그러면서 또 계속 걸어가는 중에 예전에 멈춰섰던 그 시간, 그 장소, 그 이정표를 떠올리며 새로운 힘을 공급받아 한 걸음 더 전진합니다. 누군가 말합니다. “추억은 무조건 아름답다고.” 하지만 그 추억이 정말 아름답기 위해서는 지난 날의 삶의 흔적 위에 오늘의 행복과 내일의 소망을 그려가야만 합니다.

 

 모세는 신명기의 말씀에 지난 이스라엘백성들의 광야 40년을 회고하면서, 마지막으로 선포하죠.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모세가 지난 날 하나님의 역사가 담긴 삶의 이정표를 백성들에게 다시 한 번 일깨워준 것은 한 가지 목적 때문입니다. “이제 하나님 주신 약속의 땅으로 더 힘있게 나아가라.”  

 

 오늘 우리는 요단을 건너, 길갈을 지나, 여리고까지 이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여정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약속의 땅으로 향하는 경로 속에 새겨지는 믿음의 이정표를 우리 안에도 함께 새기는 시간으로 삼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주님 안에서 누릴 오늘의 행복과 내일의 소망을 기대하며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 경로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는 요단”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은 그 자체가 기적이었습니다. 저들은 사람의 힘으로 살 수 없는 광야에서, 40년을 살아갑니다. 이제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하는 첫 걸음, 저들에게는 또 다른 기적이 필요했습니다. 바로 요단을 건너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는 건기와 우기가 있습니다. 건기 때 요단강의 깊이는 약 1미터, 폭은 약 30미터정도로, 마음만 먹으면 쉽게 건널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 3장에 보면 “곡식 거두는 시기”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때는 3-4월로 이스라엘의 우기입니다. 우기 때는 1미터였던 깊이가 3-4미터로 깊어지고, 30미터에 불과한 강폭이 1.5킬로 이상으로 늘어납니다. 그럼 지금은 상식적으로 기다릴 때입니다. 몇 달 더 기다리다가 건기 때 건너야 합니다. 어차피 40년 기다렸는데, 한 6개월 못 기다릴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우기 때에, 요단강 수위가 가장 깊을 때에, 물의 수량이 제일 많을 때에, 강폭이 제일 넓게 벌어져 있을 때에, 강을 건널 것을 명하십니다. 하나님은 도대체 왜 그러시는걸까요?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를 보이시기 위함입니다. 

  

여호수아는 백성들을 모아 놓고 명령합니다. “요단을 건너 가나안으로 가자.” 제일 선두에는 제사장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법궤를 메고 가게 합니다. 요단강 건너편에 적군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법궤를 메고 제일 앞에 섭니다. 이건 하나의 상징이죠. 하나님만 따라가겠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 모습이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진할 때 하나님께 명하신 방법이기도 했습니다. 

 여호수아 3장 15절과 16절에 보면, 법궤를 멘 제사장들이 발을 물에 담글 때에,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멈춰서는 기적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렇게 해서 요단강을 건넌 것은 홍해를 건넌 것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바다를 건넌 것이 더 큰 기적일까요? 강을 건넌 것이 더 큰 기적일까요? 당연히 바다를 건넌 것이 더 큰 기적이라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잘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홍해는 하나님께서 다 갈라놓으신 후에, 백성들로 하여금 건너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요단강은 아직 물이 찰랑찰랑 언덕에 넘쳐 흐르는데, 그 속에 발을 담그게 하셨습니다. 제사장이 여전히 흐르는 강물에 발을 담그는 믿음의 걸음을 내딛을 때에, 강물이 멈춰서는 기적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홍해보다, 요단강을 건너는 것에 더 큰 믿음의 결단이 필요했다는 거예요. 

  

지난 날의 모든 삶 속에, 우리도 그 기적의 역사를 체험하면서 여기까지 이른 줄 믿습니다. 내가 지금 믿음의 길을 걷고 있음이 기적입니다. 우리의 앞길에도 혹 요단강과 같은 장애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지난 날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수많은 요단을 건너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듯이, 앞으로도 내 앞에 놓여진 어떠한 요단이라도 건너 약속의 땅에 이르게 하실 줄 믿습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매 순간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를 체험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 경로입니다.


 “언약의 징표를 세운 길갈” 이스라엘 백성들이 강을 건널 때의 모습을 보면, 법궤를 멘 제사장이 제일 앞장섰습니다. 그 뒤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너가는데, 그냥 쭉 건너고 끝이 아닙니다. 제일 앞에 선 제사장들은 강 중간쯤에 서있는 채로 모든 백성들이 강을 건너갑니다. 그 후에야 제사장들이 비로소 강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다시 강물이 흐르게 되죠. 그런데 저들은 무조건 강을 건너가는 것에만 급급해하지 않습니다. 4장 2절과 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명하십니다. “열 두 지파의 대표들을 한 명씩 보내서 요단 가운데 제사장들이 서 있는 곳에서 돌을 하나씩 가져다가 너희들이 오늘 밤에 지낼 곳에 두라.” 이어서 본문 20절의 말씀처럼 들고 나온 열 두 개의 돌을 가지고 길갈에 기념비를 세웁니다. 

  

그 이유를 21절과 22절에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후일에 너희의 자손들이 그들의 아버지에게 묻기를 이 돌들은 무슨 뜻이니이까 하거든, 너희는 너희의 자손들에게 알게 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이 마른 땅을 밟고 이 요단을 건넜음이라.” 하나님께서 흐르는 물을 멈춰 세우시고, 요단을 건너게 하신 것을 기념하는 표징을 길갈에 세운 것입니다.

  

 이게 끝이 아닙니다. 여호수아 5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으로 진을 쳤던 길갈에서 있었던 많은 사건들을 기록합니다. 처음에 나오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할례입니다. 물론 지금도 할례를 받기에 좋은 상황은 아닙니다. 전쟁을 앞두고 있는 시점, 언제 적이 공격할지도 모르는, 적진에 들어와서 할례를 받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입니다. 하지만 저들은 모두 할례를 받습니다. 상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만을 따라갑니다. 또한 길갈에서 진을 치고 있을 때에, 만나가 그칩니다. 이제 비로소 약속의 땅 가나안의 소산을 먹게됩니다. 이처럼 길갈은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엄청난 의미가 담긴 곳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나의 길갈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세례 받은 그 순간, 내가 예수님을 영접한 그 순간, 내 힘으로 감당못할 일들을 기도함으로 이루어낸 그 모든 순간이 나의 길갈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예배하는 이 시간 이 자리가 나의 영적인 길갈입니다. 지금 이 순간의 나에게는 지나간 경로와 살아갈 경로가 동시에 있기 때문입니다. 길갈에 세워진 언약의 징표를 나의 삶에 매일 매일 새겨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 경로입니다.


 “순종으로 승리를 이룬 여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 처음 전쟁을 벌여 정복한 곳은 그 유명한 여리고성입니다. 당시 여리고 성안에는 약 1,500여명 정도가 거주했던 것으로 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에 이르렀을 때에, 여리고성 사람들은 6장 1절에 기록된대로, 완전히 성문을 걸어잠그고 아무도 출입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하루 한 바퀴씩 여리고성을 돌기 시작합니다. 이어서 여호수아의 명령에 따라 성을 향하여 외칠 때에, 성이 안으로 무너져내리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바깥으로가 아니라, 안쪽으로 무너져내립니다. 구조상으로도 바깥으로 무너져야 하는데, 그 법칙을 거스르고 안쪽으로 무너져내립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의 숫자가 몇 명인가요? 20세 이상의 남자만 해도 60만명입니다. 머릿 속에 그림을 그려 보십시오. 60만명의 장정들 앞에 서 있는 여리고성. 요 안에 1,500명이 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숫자만 믿고 쳐들어가면 못이길 게 없습니다. 여리고정복에 담긴 교훈은,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의 힘만 믿고, 그냥 쳐들어갈 수도 있었는데, 하나님의 말씀 따라 묵묵히 성을 돌았다는 순종입니다. 참고 인내하며 7일 동안 성을 돌았다는 순종이 중요합니다. 60만의 숫자로, 압도적인 숫자로 밀어붙이면, 7일이 걸릴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자신의 힘을 과신하지 않고, 순종한 모습, 여기에 여리고성 점령의 교훈이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내 힘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광야에서 순종할 수밖에 없었던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내 힘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라도 계속 순종해야 완전한 승리의 역사를 이룰 수 있음을 가르쳐주십니다. 전적인 순종을 통한 완전한 승리의 역사를 이루어가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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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물은 일요시사님에 의해 2021-09-17 15:52:29 교민뉴스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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