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대만 노인의 담대한 도전 2

법률/이민


 

<법률칼럼; 권태욱 변호사 > 어떤 대만 노인의 담대한 도전 2

일요시사 0 130

'안되면 되게 하라!’ “해 보기는 했어?”가 대한민국의 비약적 발전을 이루게 한 도전정신을 나타내는 말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사실은 한국인들이 얼마나 소극적이고 앞질러서 포기하는 일이 많은지를 보여주는 말이다. 맨날 ‘안됩니다’를 입에 달고 사는 것이 대한민국의 남자들이다. 그래서 ‘안되면 되게 하라’는 말을 군대의 조교들이나 공사현장의 감독들이 맨날 입에 달고 살아야  했고, 대기업의 총수가 사장단 회의에서 안된다는 의견을 올리는 임원에게 “해 보기는 했어?”라고 묻는 일이 매번 되풀이 되었던 것이다. 생각을 해보자. 한 두 번만 하고 말았던 말인 것 같으면 전 국민이 아는 유행어가 되었겠는가?


게다가 한국인들은 협상을 할 줄을 모른다. 값을 깎아달라고 하면 ‘됐슈~ 차라리 거름밭에 던져버리고 말지’라고 대응하는 수박 농사꾼의 협상 방식이 대한민국 표준이다. 예전에는 대한민국 사람들도 협상을 곧 잘 했다. 1960년대의 대한민국에서는 협상을 할 줄 모르면 바가지를 쓰는 것이 일상이었고, 그래서 ‘장터에 가면 부르는 값을 다 주면 안되고, 무조건 반으로 깎고, 그래서 안 팔겠다고 하면 돌아서서 가는 체를 해서 장사꾼이 붙잡도록 하라’는 교육을 처음 혼자 장을 보러 가는 며느리에게 시어머니가 일러주는 최초의 ‘협상의 기술’ 교육이었다. 바가지와 에누리가 기본인 협상의 과정이 부도덕한 것이고, 상인들이 순박한 가정주부와 농민을 등치는 것이라는 도덕주의가 팽배하면서 박정희 대통령이 어느 날 바가지 일제 단속과, 모든 물품의 정찰제를 권력의 힘으로 밀어 부쳤다. 그래서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백화점 뿐 아니라 동네 전통시장에서도 가격을 높여 부르는 사람은 비난을 받고 잘못하면 사기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는다. 이렇게 바가지와 에누리의 험난한 시장 규칙에서 어릴 때부터 완전히 격리된 상업활동에 길들여 진 대한민국 사람들은 아예 거래에서 협상이라는 것을 생각도 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아직도 바가지와 에누리가 정상적인 거래의 한 부분으로 간주되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에게 판판이 당한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거의 모든 부분에서 되는 것은 되고, 안되는 것은 안된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 살러 와서도 그런다. 게다가 준법정신이 투철해서 법의 맹점을 활용해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불안하고, 더 나가서 비도덕적이고, 넓게 보면 범법행위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언론들은 법의 빈틈을 이용해서 이익을 올리는 사람을 ‘법꾸라지’라는 이름을 붙인다.


대한민국이 아닌 제3국에서 ‘안되면 되게 하고’, ‘일단 한번 해 보고’, 법의 빈틈을 최대한 활용하는 사람들의 집단과, ‘되는 것이 확실하지 않으면 시도조차 하지 않고’ ‘법의 빈틈을 이용하는 것은 비도덕적이고 반 사회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집단이 같은 시장에서 거래를 하는 일이 오랫동안 계속되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사회 경제적으로 높은 계층과 낮은 계층으로 나뉘게 될 것이다. 인종차별이 아니라 시장과 거래에 대한 태도, 그리고 제도와 법을 대하는 태도가 그 집단의 사회 경제적 지위를 결정하게 된다.


뉴질랜드에 온 대부분의 한국 교민들은 처음 올 때는 아시아의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보다 더 좋은 조건을 갖추고, 더 많은 재산을 갖고 왔다. 1987년 이민법이 통과되고 홍보와 신청 과정을 거쳐서 199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민사회가 이제 30년이 지났다. 앞으로 한 20년 쯤 지난 뒤에 뉴질랜드 한국 교민들의 평균적 지위가 처음 이민을 올 때보다 더 높아져 있을지 여부에 대해서, 쉽게 그럴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우리 교민 사회에도 ‘안되면 되게 하라!’ ‘해 보기는 했어?’라고 계속 외치는 사람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지난 회에 이어서 계속 소개해드리는 이 대만 노인은 정말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안되면 되게 하고’, 될 가능성이 거의 없어도 ‘해 보기는 하는’ 사람인 것 같다. 세계 최고의 반도체 공장이 삼성의 대한민국이 아니라 대만에 있는 것도 이런 사람들이 아직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정주영 회장은 벌써 예전에 돌아가셨고, 지금 그 그룹을 이끄는 것은 아들도 아니고 손자인 사람이다. ‘부자가 3대는 간다’고 했으니 이 세대까지는 대한민국이 계속 발전하는 행진을 계속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배우 윤여정 씨가 오스카 상을 받고 BTS가 빌보드 차트 상위권을 계속 점거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그럴 것도 같은데, 세계에서 둘 째로 큰 반도체 생산 공장을 갖고 있어서 미국 대통령이 만나자고 하는 데도 지난 정권에서 최고 권력자를 등에 업은 사람에게 말 한 마리 사 드렸다는 죄로 총수가 감옥에 갇혀 있는 바람에 가지 못하는 상황인 것을 보면, 잔치의 끝은 생각보다 빨리 올지도 모르겠지만.


1995년에 뉴질랜드 영주권을 취득한 이 노인( 그 당시는 41세로 명실상부한 장년이었다)이 그 가족을 데리고 뉴질랜드에 입국한 것은 최초 영주권 비자 기간 2년이 거의 끝나가는 1998년 3월 이었다. 그 사람이 대륙의 배짱과 만만디 정신으로 확실히 무장된 인물인 징조가 여기서 벌써 나타난다.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는 사실이지만, 지금 대만 사회의 주류를 구성하는 사람들은 모택동에 패배한 장개석과 함께 건너 간 중국 본토인, 그 중에서도 북경지역 사람들이다. 중국은 모택동의 결정으로 간체를 쓰지만, 대만은 지금도 정체를 문자로 사용한다.


그렇게 영주권 비자가 종료되기 직전에 가족을 데리고 입국한 이 사건의 주인공은 가족이 자리잡도록 도와주고는 곧바로 대만으로 돌아간다. 이 사건 재판부에 제출한 설명에 의하면 화학공학자인 주인공이 전공을 살려서 취업할 곳이 뉴질랜드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뉴질랜드에서 가족과 함께 지내려면 일반 단순 노무직을 선택해야 하는데, 거기서 벌어들이는 수입으로서는 가족을 부양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기가 대만으로 돌아간 것은 자의가 아니라 강요된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장인어른이 병환을 앓고 있었는데, 아내의 형제들, 즉 장인의 친 자녀들은 직장 때문에 병구완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서,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자기 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 두 가지 피치 못할 이유 때문에 대만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딱한 사정의 주인공이었다. 재판부에 제출한 본인 변호인의 설명에 의하면. 


(다음 호에 계속)


권태욱 변호사  taekwonlawy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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