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사람들(7)] 레드(Red)처럼 강한 내 친구, 니콜렛

문학의 향기


 

[글쓰는 사람들(7)] 레드(Red)처럼 강한 내 친구, 니콜렛

일요시사 0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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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를 처음 만난 건 7년 전 어느 겨울날이었다허리를 다쳤다며 나를 찾아왔다키는 작았지만 다부지게 생긴 모습에서 강렬함이 전해져 왔다온천 모텔을 운영한다는 그는 군살이 하나도 없었다저녁 8시면 잠자리에 들고 새벽 4시면 일어나 모텔 일을 본 뒤 헬스장에서 땀을 흘렸다.

그는 쾌활하고 밝은 성격을 지녔다언젠가 내게 물었다. ‘이름을 왜 메이(May)로 지었느냐. ‘5월의 신부라는 말이 있듯이 한국에서는 결혼을 가장 많이 하는 달이고또 춥지도 덥지도 않은 5월에 태어나서 그렇게 지었다고 했다.

그러자 태어난 날이 며칠이냐고 물었다. 3일이라 답했다그 뒤 그는 한 번도 내 생일을 잊은 적이 없다진료 중일 때는 잠시 들러서자리에 없을 때는 문 앞에 예쁜 카드와 함께 선물을 두고 갔다.

2013년 어느 날그가 허리가 아프다며 오랜만에 진료실을 찾아 왔다얼굴은 아주 수척해 보였고예전에 탄력 있던 애플 힙(Apple hip)은 오간 데 없이 늘어진 살 속에 뼈가 만져질 정도였다내가 치료를 하는 동안 그는 그간 있었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의사에게 내가 당신 미쳤냐고 했어글쎄 내가 두세 달 밖에 못 산다고 하잖아폐암 말기라나농담하지 말라고 하고 왔어내 평생 심한 감기 한 번 걸린 적 없고 날마다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는데내가 암이라니정말 웃기지 않니?”

치료하다 말고 나는 그를 올려다봤다망부석이 되어 자기를 쳐다보는 내게 “메이야난 괜찮아나랑 싸워 못 이겨내가 얼마나 강한데라고 말했다정말 그랬다그는 강했다. 3개월 시한부라고 못 박은 의사에게서 기적이 일어났다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스피드광인 그는 오토매틱 차를 거부한다수동 무스탕(Mustang) 차가 뉴질랜드에는 없어 미국에 주문할 때도 빨간색을 골랐다한번은 빨간 머리를 하고 나타나 나를 놀라게 한 적도 있다쇼핑할 때 빨간색 물건이 보이면 일단 그 앞에 선다옷이든 신발이든 부엌용품이든 뭐든한국에 주문해 받은 빨간 핸드폰 지갑을 내게 보여주면서 소리를 지르며 얼굴에 뽀뽀세례를 퍼부은 기억이 있다.

2년 전 한국 방문에 그와 함께했다암이 진행되고 있어 동행을 만류했지만 그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그는 이태원에서 무릎까지 오는 빨간 롱부츠를 찾아야 한다며 날 데리고 두세 시간을 다녔다나는 그와 환자로 만난 관계라 그때까지 진료실 밖에서는 차 한 잔을 나눈 적이 없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보름 동안 24시간 함께 지내면서 절친이 되었다그의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성격 덕분이었다어디에 가나 주위를 환하게 만드는 그의 쾌활한 웃음을 들을 때마다 나는 이렇게 말하곤 한다.

“You are the happy virus.”(너는 행복을 전염시켜 주는 사람이야.)

한국에 머무는 동안 목욕탕에 가는 게 일과의 시작이었다전신을 드러내야 하는 목욕탕이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줌마들 사이에서 물속 운동을 따라 하며 즐거워했다나만큼이나 물을 좋아하고김치를 즐겨 먹는다.

한 달 전그가 전화를 걸었다시간을 내 와 달라고 부탁했다. 64병동 4호실폐암이 전이되어 뇌로 퍼졌다고 한다그런데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환한 웃음으로 나를 반겨주었다그는 하얀 침대 시트 대신 빨간색 담요를 덮고 있었다슬픔에 젖어 있는 내게 괜찮아정말 괜찮아하며 오히려 나를 위로했다.

그사이 우리는 오클랜드 랜턴 페스티벌(등불 축제)에 함께 했다음력 설을 맞아 중국인 단체에서 주최하는 축제다나는 몇 번이나 다녀왔지만 등불 축제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를 위해 휠체어 초보운전을 마다하지 않았다그는 왕관 모양의 머리띠를난 리본 모양의 머리띠를 하나씩 사서 쓰고는 동심의 세계로 향했다오르막이 있는 곳을 따라 끌어야 하는 휠체어 운전은 쉽지 않았다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싶은 욕심에 많은 인파를 헤치고 다녀야 하는 내내 등줄기에서 땀이 흘러내렸다마침내 그가 나를 보며 한마디 한다.

메이나랑 자리 바꾸자네가 여기에 앉아야 할 것 같아에너지가 하나도 남지 않은 얼굴이야내가 밀어줄게.”

힘들어하는 내 모습을 들켜버렸다다시 힘을 내 꿋꿋이 익스큐즈 미’(Excuse me.)를 연발하며 사람들 사이에 길을 만들었다.

7년 동안 해마다 생일을 잊지 않고 찾아와 주었던 고마움을 이젠 내가 돌려줄 차례다뜸을 떠주고 지압을 해주는 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다지만 말이다한 번도 약한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는 그는 내가 눈물을 글썽일 때마다 웃으며 이렇게 지청구를 놓았다.

그 슬픔의 에너지가 내게 전해지면 하나도 좋을 게 없어네 눈물은 내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담담하게 말한다잠시 화장실을 다녀오니 그가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다.

숨을 깊게 들이쉬고 잠시 멈추세요그리고 깊게 다시 내쉬세요다시 한번 더기분이 한결 좋아지죠목소리가 처음보다 나아졌어요이제 언니에게 가서 안아주며 사랑한다고 말하세요.”

우울증을 앓고 있는 엄마와 통화를 하던 중이었다전화로 호흡법을 전해주고 있었던 것이다본인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태에서도 엄마를 챙기는 착한 딸역시 해피 바이러스 니콜렛이다.

요즘 나는 쇼핑몰에 가면 나도 모르게 주위를 자주 두리번거리곤 한다빨간색은 행운을 가져다 줄 것 같아 좋아한다는 니콜렛의 말처럼 그에게 줄 빨간 색의 무엇이 없나 하며 찾는다행운의 여신이 그의 곁을 지키고 있을 것만 같다.

                                                                                                            필명메이

 

글쓰는 사람들은 오클랜드를 중심으로 한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한 달에 두 번 모여 좋은 글을 나누며 글쓰기도 하고 있습니다네 명이 번갈아 가며 연재합니다.


 

[이 게시물은 일요SISA님에 의해 2018-07-02 20:55:22 교민뉴스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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