⑫워쇼스키 남매 각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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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창걸의 영화로 본 세상> ⑫워쇼스키 남매 각본의 <브이 포 벤데타>

일요시사 0 4669

“정의를 위해 싸워라”

전창걸 영화칼럼니스트 = 개그맨, 영화인, 영화평론가 등 다양한 옷을 입고 한국 대중문화계를 맛깔나게 했던 전창걸이 돌아왔다. 한동안 대중 곁을 떠나 있었던 그가 <일요시사>의 새 코너 ‘전창걸의 영화로 본 세상’의 영화칼럼니스트로 대중 앞에 돌아온 것이다. 아직도 회자되는 MBC <출발! 비디오여행>의 ‘영화 대 영화’ 코너에서 전창걸식 유머와 속사포 말투로 화제를 모았던 그는 이번에는 말이 아닌 글로써 영화로 보는 세상이야기를 들려줄 예정이다. 그 열두 번째 이야기는 정의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에게 기운을 불어넣어주는 영화 <브이 포 벤데타>다.

날이 춥다. 12월1일, 거센 눈보라가 도시를 감싸며 가을 흔적마저 사라졌다. 검회색 아스팔트 바닥에 벤 낙엽들 위로 겨울바람이 매서운 순찰 중이다. 계절이 바뀌는 아픔 따위는 청춘의 몫이겠지 했지만 이별에 익숙하지 못한 가슴은 해가 지날수록 쉬이 허물어지고 있다.

노루가 말?

유투브를 뒤적이다 카펜터스의 음악을 발견하고 듣는다. “Yesterday Once More” “내 모든 기억들이 다시 선명하게 돌아와 예전처럼 날 울게 할 것만 같아… 그 시절로 다시 한 번 돌아갈 수 있다면….” 학창시절 어른인 척 음악다방에서 쪽지에 리퀘스트 적으며 듣던 음악.

유리박스 안 낮고 굵직한 보이스를 가진 디스크자키(DJ)의 “3번 테이블 박 사장님 전화 오셨습니다”란 멘트가 부럽고 멋있었던 시절, 친구들과의 그룹 사운드 합주, 연극반 늦은 연습과 연극제 공연, 검은 교복과눌린 모자에 국방색 책가방… 하얀 칼라에 새침한 한 학년 선배와의 손 시린 데이트 등 카펜터스의 노래를 듣자니 참 여러 추억이 솟아오른다.

어른이라서 이제 그런 막연하고 좋은 감정이 사라진 건지, 세상이 변해서 그런 건지, 세상은 원래 그랬는데 늦게 알게 된 건지, 내가 알게 된 것 마저 잘못 가고 있는 선택인지, 정해진 것인지, 길 벽을 뚫고 다른 길이 있는지 여태 흔들린다.

쉰 쯤 됐으면 누가 노루 한 마리를 끌고 와서 말이라고 해도 “아 그 말 참 예쁘다” 해야 맞는 건지 “×까 ×베이비야. 노루는 노루지 개××노마” 하면서 두들겨 패고 쫓아내야 하는지 흔들린다는 얘기다.

분명 기초교육은 ‘정직하고 속이지 말라’ ‘남을 위해 좋은 일하고 살아라’라고 가르쳐 놓고 정작 큰 사건, 국가적인 중대사 앞에서 거의 모든 것이 ‘노루를 말이라고 확신’시키고 인정한 채 넘어가니 하는 얘기다.

속임수 한 점 없을 맑은 아이시절 권력과 신뢰를 한 몸에 받은 선생님이 가르쳐 준 교훈은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다. 더욱이 착하게 살라하고 속이지 말라하니 그 착한 아이들은 선생님의 말씀을 얼마나 소중하게 간직하겠는가.

하물며 애국심은 어떠한가. 뭐도 모르는 시절 태극기 앞에서 맹세도 하고 애국가도 거의 매일 부르며 국가에 대한 사랑을 심어놓고 국가가 노루를 말이라 우기고 있지 않은가. MB정부에서 지금까지 국민을 위한다는 대선공약은 공갈빵이었다는 것이 드러난 상황에서 ‘공약 어디 갔냐?’고 물으면 오히려 묻는 사람을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가? 9급 공무원도 아닌 사람이 국가요직들을 한 달에 두 번 사석에서 만나며 국정을 운영하고 있었다는 기사가 그간 정부에 우호적이던 신문사에서 나가자 그에 대한 정부와 집권당의 반응이 가관이다.

아니나 다를까 ‘정보 제공자를 처벌하겠다’며 엄포를 하고 유언비어란다. 정윤회와 십상시를 조사했던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의 인터뷰(조선일보)가 정보의 60% 이상이 진실이라고 인터뷰까지 한 마당에 찌라시 운운하는 건 모순의 극치이며, 정보누설을 추궁하는 건 정윤회 사설국정운영팀의 비호 아니겠는가? 도대체 투명한 게 한 톨 없는 정부의 모습이다.

‘부정’은 공고 ‘정의’는 시들 사회분위기
정의투쟁 동참하는 가면 주인공은 당신

4·16 세월호 대참사 당시 가장 중요한 대응시간에 등장하는 정윤회라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이기에 정부와 여당이 쌍수 들고 비호를 하는지 끝까지 파고 들어야할 문제다. 국가에 법이 있을진대 국정농단의 주역들을 법으로 추국하고 법에 의한 시스템으로 국가가 운영되어야 하지 않는가? (이런 얘기를 하면 ‘노루를 노루라 했다’는 종으로 구분돼서 힘들어지는 세상이지만, 나는 이번 사태가 MB에게는 또 행운이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 주인공 '브이'

사자방 비리 국정조사 분위기가 어느 정도 익을 즈음이었다. 무슨 타이밍이 이리도 기가 막히는지 사자방 비리는 신문기사에서 꼬리를 찾을 수 없다. 이 사태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반응은 허탈하다.

청와대 문건을 검찰수사에 넘겼다하는데 결과야 불 보듯 뻔한 거 아닌가. 정도와 강직을 모태로 한 법관들을 좌천시키고 파문하여 남겨진 팀들에게 수사를 맡겨봐야 ‘노루가 말’이 되는 결과가 뻔한 ‘법세탁’ 절차가 이뤄진 뿐이다.

얼마 전 우린 잘못된 진단과 치료로 소중한 사람이 목숨을 잃는 과정을 지켜봤다. 보험료를 더 타내려고 허락 없이 신체 장기를 떼어내 버리는 의사를 목격했다. 국가를 한 몸으로 보고 국가를 운영하는 사람들을 국민에게 허락받은 의사로 비유했을 때 우린 얼마나 위험한 의료진 앞에 마취된 채 누워 있단 말인가?

허가받지 않은 의사들이 의식 잃은 내 앞에 메스를 들고 제 멋대로 칼부림하는 장면이 연상된다. 가만있으면 이것저것 다 들어내고 거덜이 나 죽을 판이다. 에이 뭐 이러다가 좋은 시절도 오겠지? 웃기는 소리다. 

야당의원들이 목숨 걸고 국민을 위해 투쟁하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처럼 야당 타이틀 달고 여당을 지지하는 의원이 많은 시절이 아니었다. <나는 꼼수다>가 1000만 청취를 쉽게 이루던 시절이 있었다.

부정한 권력을 향한 통쾌한 도전과 시원한 풍자가 사람들의 위안과 용기가 되던 시절, 제도권 언론의 등이 90도 기울어 시선이 땅바닥을 훑던 시절, ‘쫄지 마!’ 하고 방송 말미에 가슴에 한을 잠시나마 흩어주던 시절이 있었다.

노루를 노루라 자신 있게 말하고 청취하고 즐겁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적절해져버린 팟캐스트를 진행하던 이들이 용맹하던 시절이 있었다. 부정은 공고해져만 가는데 정의는 점점 시들해지는 듯한 이 분위기는 뭘까?

‘정의’를 위한 투쟁

노루가 말로 보였으면 하는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정의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을 응원해야겠다. 워쇼스키 남매 각본, 제임스 멕티그 감독의 <브이 포 벤데타>를 추천한다. 기운 불어넣어주는 영화다. 가슴에 남은 지워지지 않는 정의의 이름으로 투쟁에 동참하는 가이 포크스 가면의 주인공은 바로 당신이다.

<www.전창걸.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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