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의 두뇌싸움 ‘빙판 위 체스’… 운동 안 된다고 ? 팔굽혀펴기 수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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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의 두뇌싸움 ‘빙판 위 체스’… 운동 안 된다고 ? 팔굽혀펴기 수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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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의 두뇌싸움 ‘빙판 위 체스’… 운동 안 된다고 ? 팔굽혀펴기 수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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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링은 섬세한 스포츠다. 서울컬링클럽의 한 동호회원이 서울 노원구 공릉동 태릉선수촌 빙상장에서 목표 지점을 바라보며 스톤을 신중하게 투구하고 있다.
1998년 나가노동계올림픽을 보다가 놀랐던 기억이 있다. 쇼트트랙 스케이팅 경기를 기다리는 사이 처음 보는 종목이 TV에 나왔다. 스포츠라 하기엔 지나치게 한가해 보였다. 빙판 위에서 한 사람이 둥글납작한 돌을 밀어냈다. 다른 두 사람은 돌을 따라가며 솔질을 했다. 목표점에 있는 원 주변에 돌이 이리저리 부딪치고 흩어졌다. 스포츠 하면 떠오르는 땀과 치열함이 빠진 듯했다. 컬링에 대한 첫 기억이다. 컬링은 스포츠이기도 하고 ‘놀이’이기도 하다. 어릴 때 했던 구슬치기, 비석치기, 알까기의 요소들이 조금씩 묻어 있다. 스포츠와 놀이를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신나게 즐길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생소하지만 재미있는 컬링

19일 서울 노원구 공릉동 태릉선수촌 빙상장에서는 서울컬링클럽 동호회원들의 컬링 시합이 한창이었다. 초등학생부터 40대 초반까지 연령대는 다양했다.

연습 경기였지만 열기는 겨울의 한기를 녹일 만큼 뜨거웠다. 투구를 하는 선수는 손끝까지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스위핑(sweeping)을 하는 분주한 손길도 실전과 다름이 없었다. 결과에 따라 한쪽에서는 환호가, 다른 쪽에선 탄식이 터져 나왔다. 양재봉 서울컬링클럽 감독은 “우리 팀은 자발적이고 자생적으로 생긴 국내 유일의 컬링 동호회”라며 “거의 매주 일요일마다 태릉에 모여 연습을 한다”고 말했다.

그가 꼽은 컬링의 매력은 짜릿함이다. 양 감독은 “정말 어려운 샷이 있는데 팀원들이 힘을 모아 작전에 성공했을 때의 짜릿한 기분은 안 해 본 사람들은 모른다”고 밝혔다. 한 동호회원은 “컬링은 보는 것과 실제로 했을 때의 차이가 가장 큰 스포츠다. 해 보면 깜짝 놀랄 정도로 재미있다”고 말했다.

◆한국인들에게 유리한 민감한 스포츠

16세기 이전 스코틀랜드의 얼어붙은 호수에서 돌덩이를 미끄러뜨리던 놀이에서 유래했다는 컬링은 영국과 영연방에서 스포츠로 발전했다.

캐나다에서는 아이스하키와 함께 국민적인 스포츠로 사랑을 받고 있다. 1959년 세계컬링선수권대회가 처음 열렸다. 1965년 국제컬링연맹이 창설됐고, 1991년 세계컬링연맹(WCF)으로 개편돼 각종 국제대회를 주관하고 있다. 1998년 나가노동계올림픽부터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국내에선 1994년 대한컬링경기연맹이 창설됐고, 그해 4월 세계컬링연맹에 가입했다. 현재 컬링 경기장은 태릉선수촌과 경북 의성 등 단 두 곳에 불과하다. 대한컬링경기연맹에 따르면 2011년 기준으로 컬링 등록 선수는 총 563명이고, 팀은 120개다. 연맹은 선수와 동호인을 포함한 국내 컬링 인구를 1500∼2000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연맹 관계자는 “컬링 동호인이 꾸준하게 늘고 있다. 초·중·고교에서 컬링 선수들이 육성돼 자연스럽게 컬링 인구가 증가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은 짧은 역사와 빈약한 저변에도 불구하고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동계아시안게임에서 남녀 모두 금메달을 획득했고,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도 남자부 금메달 경험이 있다.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에서는 휠체어컬링에서 은메달을 거머쥐기도 했다.

컬링인들은 컬링이 한국인에게 상당히 적합한 종목이라고 말한다. 컬링은 투구자가 돌을 언제 어떻게 놓느냐의 아주 미세한 차이가 큰 결과의 차이로 나타나는 민감한 종목인데 어릴 때부터 젓가락질을 한 한국인들이 섬세한 손놀림을 하기 유리하다는 설명이다.

◆복잡한 작전이 요구되는 ‘빙판 위의 체스’

컬링은 각각 4명으로 구성된 두 팀이 시트(sheet)라는 길이 42.07m, 너비 4.27m인 직사각형의 얼음 링크 안에서 스톤(stone)이라 부르는 둥글고 납작한 돌을 미끄러뜨려 하우스(house)라는 반지름 1.83m의 표적 안에 넣어 득점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두 팀이 10엔드(10회전)에 걸쳐 각 엔드에 한 선수당 2개씩 총 16개의 스톤을 번갈아 하우스를 향해 던진다. 리드(lead)라고 부르는 1번 투구자를 시작으로 세컨드(second)-서드(third)-스킵(skip)의 순서로 스톤을 던진다.

하우스 안에 들어간 스톤 중 상대 팀보다 하우스의 중심인 티(tee)에 근접한 것마다 1점을 얻는다. 원 안에 아무리 많은 스톤이 있어도 상대 스톤이 한 개라도 티에 더 가까이 있으면 모두 무효 처리된다.

하우스 앞쪽에 프리가드존이 있어 처음 굴린 4개의 스톤이 여기에 있으면 라인 밖으로 쳐 낼 수가 없다(5번째 스톤부터는 가능). 결국 하우스 안에 스톤을 넣으려면 이를 피해 가든지 앞의 스톤을 옆으로 밀어내고 자신의 스톤이 나갈 방도를 궁리해야 한다.

프리가드존에 있는 첫 4개의 스톤을 밀어 라인 밖으로 쳐 내면 실격이 된다. 프리가드존의 돌을 피해 득점을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작전이 요구된다. 컬링을 ‘빙판 위의 체스’라고 부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컬링 경기장 표면은 매끈하지 않다. 페블(pebble)이라는 작은 물방울을 뿌려 요철을 만들었기 때문. 브러시로 빙판을 문지르는 스위핑은 그래서 필요하다.

스위핑으로 페블을 녹여 스톤을 좀 더 멀리 가게도 하고 특정 부분만 스위핑해 스톤의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스위핑을 해 줄 경우 하지 않았을 때에 비해 스톤을 약 3~5m 더 나가게 할 수 있다. 스위핑은 쉬워 보이지만 의외로 체력 소모가 크다. 투구당 적게는 20회에서 많게는 80회까지 문질러야 하는데 운동 강도가 팔굽혀펴기급이다.

◆30분만 배우면 바로 경기 시작

컬링은 기초 자세를 30분만 배우면 바로 경기에 나설 수 있다. 그만큼 배우기가 쉽다. 여기에 경력이 쌓일수록 컬링의 묘미에 더욱 빠져든다. 초보자는 초보자대로, 고수는 고수대로 얼마든지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게 컬링이다.

체력 강화와 건강 유지 효과도 크다. 10엔드 한 게임을 치르는 데 걸리는 시간은 보통 2시간30분 정도다. 오랜 시간 동안 빙판 위에서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감기 등 환절기 질환에 대한 저항력을 키울 수 있다.

스톤을 투구할 때 곧은 자세가 필요해 어린 학생이나 중·장년층의 자세 교정 효과도 있다. 미끄러운 빙판 위에서 하는 운동이라 자연스럽게 몸의 균형 잡기 능력도 생긴다. 다양한 작전 구상이 필요하기 때문에 두뇌 회전이 좋아지고 4명이 각자 맡은 임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이길 수 없어 책임감도 기를 수 있다.

이화종기자 hiromats@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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