꾹꾹 눌러쓴 문장가 김훈의 산문집; 연필로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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꾹꾹 눌러쓴 문장가 김훈의 산문집; 연필로 쓰기

일요시사 0 151

<안은채 Auckland International College Y12>


위대한 개츠비, 안나 카레리나 등의 위대함은 그 첫 문장부터 시작된다. 첫 문장은 그 작품의 세계로 들어서는 현관이다. 그래서 작가들은 첫 문장에 공을 들이고 그 첫 문장을 위해 며칠이고 몇 달이고 기다리기도 한다. 한국 소설의 가장 아름다운 첫 문장을 이야기 할 때 어김없이 등장하는 문장이 있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바로 김 훈 작가의 <칼의 노래> 이다. 김 훈은 이 문장에서 “꽃이”와 “꽃은”을 두고, 한참을 고민했다고 한다. 어느 것을 써도 무방할 주격조사를 두고도 그는 담배 한 갑을 다 태우고서야 “꽃이” 라고 적었다. “꽃이”라고 적어야 “꽃은” 일 때보다 좀 더 능동적, 주체적 행위를 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 훈은 작가이면서 동시에 문장가이다. 이 아름다운 첫 문장 다음에 이어지는 문장들 역시 걸작이다. 


“꽃 피는 숲에 저녁노을이 비치어 구름처럼 부풀어 오른 섬들은 바다에 결박된 사슬을 풀고 어두워지는 수평선 너머로 흘러가는 듯싶었다.”


이런 문장들은 아마 컴퓨터 앞에서라기보다는 연필로 꾹꾹 눌러쓰며 몇 번씩 지우고 고쳐 쓰기를 반복했을 것이다. 우리 시대의 문장가라 불리는 김 훈은 소설 외에도 몇 권의 <풍경과 상처>, <자전거 여행>, <라면을 끓이며> 등의 산문집도 냈다. 그는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다. 어떤 평론가는 그의 산문을 두고 수필을 문학적 경지로 끌어 올렸다 라고도 했다. 


<연필로 쓰기>는 그가 가장 최근에 낸 산문집으로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사유와 글쓰기에 대한 속내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의 책이다. 책의 앞날개에는 “나는 겨우 쓴다.”라고 썼고, 뒷날개에는 “연필은 나의 삽이다. 지우개는 나의 망설임이다.” 라고 썼다. 이 산문집에는 그가 겨우 썼다고 하는 34편의 글이 있다. 그리고 그는 서문을 이렇게 시작한다. “연필은 내 밥벌이의 도구다. 글자는 나의 실핏줄이다. 연필을 쥐고 글을 쓸 때 나는 내 연필이 구석기 사내의 주먹도끼, 대장장이의 망치, 뱃사공들의 노를 닮기를 바란다. 지우개 가루가 책상 위에 눈처럼 쌓이면 내 하루는 다 지나갔다. 밤에는 글을 쓰지 말자. 밤에는 밤을 맞자.”


김훈은 그의 글쓰기를 노동이라고 여기고, 연필은 그에게 노동의 도구이며 연장이다. 어쩌면 그의 이런 생각은 그가 지겨운 밥벌이라고 했던 오랜 기자생활 때문인지도 모른다. 밥을 위하여 글을 쓴다는 것, 그것은 곧 노동이며, 연필은 신성한 연장인 셈이다. 그의 산문에는 땀 냄새와 삶의 고단함 등이 묻어나는 것도 이런 까닭이며, 그래서 그의 글은 구체적이며 정확하다. 


그는 삶을 구성하는 여러 파편들, 날마다 부딪치는 것들에 대하여 말하려 하고, 생활의 질감과 사물의 구체성을 확보하는 글을 쓰려 애를 쓴다. 그래서인지 그는 강연할 때도 말을 신중하고 아끼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산문집에 실린 <밥과 똥>에 보면 “간밤에 마구 지껄였던 그 공허한 말들의 파편도 덜 썩은 채로 똥 속에 섞여서 나온다. 똥 속에 말의 쓰레기들이 구더기처럼 끓고 있다. 저것이 나로구나. 저것이 내 실존의 엑기스구나.” 라고 쓴다. 이처럼 그는 공허하게 흩어지기 쉬운 말은 아끼며, 구체적인 글로 적으려 애쓰는 작가다. 작가는 <밥과 똥>에서 똥에 관한 많은 것들을 망라하는데, 김훈처럼 똥에 대한 질감까지 구체적으로 묘사한 작가는 드물다. 


그는 다독가로도 유명한데, 이 <밥과 똥>에서는 이배근, <야생동물이 남긴 소중한 흔적 “똥”> 이란 책의 인용부터 일본 메이지유신 때 일본 정부가 제정한 “분뇨 취급규칙”에서 정한 똥의 등급까지 망라한다. 이 편에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가 알게 된 시청의 젊은 청소 2과장의 말이다. “똥은 평등하다. 신분이나 계급을 가리지 않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든 성인은 하루에 200~300그램의 똥을, 1.2~1.5리터의 오줌을 눈다. 그는 마치 모든 일들은 노동이며, 노동은 곧 밥에서 똥으로 이어지고, 이 일은 모두 평등하고 공평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호수공원의 산신령> 에는 일산 호수공원의 풍경이 그려지는데, 여러 노인들의 이야기가 주다. 70대 작가의 시선에는 동년배에 대한 애정이 담겨져 있지만, ”한 생애를 늙히는 일은 쉽지 않다.“ 라고 적었다. <내 마음의 이순신 1>, <내 마음의 이순신 2> 에서는 이 순신에 대해 그가 얼마나 탐구했으며, 연구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의 대표작이자 앞으로도 한국 문단에서 빼놓을 수 없게 될 그의 명작 <칼의 노래>가 탄생되기 까지 그의 연구가 얼마나 집요했을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들이 많이 있다. 


이순신이 갇혀 있던 감옥은 지하철 1호선 종각역 1번 출구 앞 SC제일은행 자리에 있었다는데, 감옥에서 나와 백의종군하는 이순신과 영의정 류성룡은 밤새도록 이야기했고 닭이 울 때 파하고 나왔다라고 했는데, 이순신은 이 간밤의 대화에 대해서는 쓰지도 않았고 말하지도 않았다라고 작가는 말한다. 작가는 이런 이순신의 침묵에 마음이 닿았을 것이다. 작가는 그래서 ”이순신의 백의종군은 완강한 침묵으로 시작되고 있고, 침묵의 힘은 명량에서 노량으로 이어진다.“ 라고 적었고, 공로가 죽음일 수도 있다는 이 불의한 세상의 더러움을 이순신은 알고 있었고, 도적을 물리치고 전쟁을 끝내는 날 그는 바다에서 전사했다라고 적었다. 


김훈은 글에서 은유나 직유를 찾기 힘들다. 그의 문장은 늘 간결하며 사실만을 직시하고 감정을 내세우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문장에서는 형용사나 부사도 잘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이것은 이순신을 닮아 있는지도 모른다. 그는 이순신에 관한 산문에서 ”부하를 목베거나 곤장 때릴 때 이순신은 어떠한 감정도 노출하지 않았다. 목베었다. 때렸다. 가두었다. 가 전부다. 그는 자비로운 장군도 아니었고 무자비한 장군도 아니었다. 자비나 무자비로 재단할 수 없는, 일이 그렇게 되어 질 수밖에 없는 길을 그는 걸어갔다. 나는 이 무정한 문장들을 읽으면서 ‘목베었다, 때렸다’ 뒤에서 슬픔을 안으로 밀어넣고 있는 이순신을 느꼈다. 그는 말하지 않고, 갈 길을 간다.“ 라고 적었다. 김훈의 글도 이순신의 이런 글과 닮아있는 것은 우연이 아닐 지도 모른다. 


김훈은 그의 글을 사실적으로 쓰기 위해, 수술도감 같은 책도 기꺼이 탐도하는 작가다. 체험할 수 없는 것들을 쓰기 위해서 그는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하는 작가다. 이순신이 칼을 휘두르는 심정으로 그도 연필을 꾹꾹 눌러쓰는지도 모른다. 


<연필로 쓰기>에는 진중한 글들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Love is touch, Love is real]은 달달하다. 이 달달함을 김훈은 창경원의 동물들에게서 발견한다. 그리고 우리 인간에게로 나아가는데 작가는 로댕의 조각 <키스>, 사진작가 박경만이 프라하에서 찍은 <키스>에서 사랑의 관념을 이야기하면서 키스하는 젊은이들을 보면 신난다 라고 했다. ”연애하는 젊은이들은 이 나라의 동력이고 희망이다. 젊은이들이 연애를 하니까 이 나라는 미래가 있다. 연애는 정치 슬로건보다 확실한 미래다.“ 라고 적는다. 


이 작품들 외에도 [이승복과 리현수]에서는 우리 시대의 어두웠던 슬픔과 아픔들을, [늙기와 죽기]에서는 저물어 가는 삶들에 대한 애정과 고찰이, [말의 더러움]에서는 온통 비방과 헐뜯기, 가짜뉴스가 판치는 세상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꽃과 노을]에서는 아름다운 색의 향연들을 대가의 문장으로 만날 수 있다. 


작가는 자신의 글이 여론을 일으키거나 거기에 붙어서 편을 끌어모으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지 않고, 그의 글이 다만 글이기를 바랄 뿐, 아무것도 도모하지 않고 당신들의 긍정을 기다리지 않는다 라고 한다. 그리고 이 책의 출간으로 그의 적막이 훼손된다면 그것은 전혀 작가가 바라는 바가 아니다 라고 책의 서문에 알림이란 형식으로 밝혔다. 어쩌면 일흔을 넘긴 작가는 자신의 글이 어떤 목적보다는 오로지 글로만 남기를 바라지만, 그가 이룩한 문학적 성취와 위치가 그의 글을 그의 바람대로 되지 않을지 모른다. 


박경리 작가는 주로 파커51 만년필로 집필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김훈 작가는 항상 연필로 집필한다고 하니, <연필로 쓰기>에서 그의 산문의 정수를 만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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